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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 즉, 청나라의 뿌리는 어느 나라인가

기사입력 2021.03.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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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타임뉴스 = 김두만기자] 청나라 역사를 기록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란 책이 있다. 

     

    이 역사서적은 1777년 청나라 건륭제의 지시에 의해 43명의 학자가 참여하여 만들었으며 부족, 강역, 산천, 국속 등 4개 부문의 총20권으로 편찬된 역사서이자 문화서적이다. 

     

    한마디로 청조가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편찬한 책이다.여기서 청조의 성씨를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누르하치(청나라 태조)는 여진족을 이끌고 후금(後金)을 세우며 성씨를 애신각라(愛新覺羅)라 했다. 

     

    즉, 자기의 본성을 버리고 성을 "애신각라”로 개성하여 신라의 후손임을 상징하고자 했던 것이다. <신라(新羅)를 사랑(愛)하고 생각(覺)하라> 모든 여진족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신라의 아들들이니 신라를 생각하고 우리 뿌리를 잊지 않아야하니 성을 애신각라(愛新覺羅)로 하노라" 라고 하였다. 

     

    누르하치는 1592년에 조선이 왜(倭)의 침략을 받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왕께 말하기를 \"성상께서 허락하신다면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제 휘하의 2만 병사를 이끌고 나아가 한달음에 바다속으로 처넣어 버리겠습니다" 라는 요지의 장계를 올렸으나 조선의 관료들은 격식을 갖추지 못한 문장이란 이유로 이를 묵살했다. 

     

    또한 동족의 국가로 인정해 줄 것을 조선에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오랑캐라 하여 이 또한 인정하지 아니하였다.청 태종(누루하치의 아들)은 병자호란시 삼전도에서 항복을 받을 때 조선의 왕 인조에게 말하길 "원래 우리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다. 그런데 왜 그대들은 동족을 아니 따르고 명나라를 돕는가? 이해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후에 청태종은 <김해김씨 시조릉>에 가서 자신의 조상이라 하여 제사하고 돌아갔다하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가 모택동에게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판사가 피고의 성(性)씨를 묻자 부의가 말하기를 \"애신각라\" 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판사가 말하길 "참으로 희한한 성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후금, 후에 청나라로 나라이름을 바꾼 만주족(여진족)은 한민족과 같은 민족임을 자처 했으며 신라의 후손으로써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셈이다.그러면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신라인이라는 문헌들은 많이 존재하는바 후금,후에 청태조인 누르하치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먼저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다.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金之始祖諱函普), 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형 아고호불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 

     

    이글을 분석해 보면 금(金)나라의 시조인 함보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려에서 왔는데, 그의 형제는 고려에 남고 혼자만 금나라로 왔다는 해석이다. 또한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더불어 송나라 때의 역사서 '송막기문(松漠紀聞)'은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고 전한다. 더욱이 이 기록들을 뒷받침 하기위한 자료는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부안김씨>들의 족보에서 찾을 수 있다.즉,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금사>,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or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이 부분은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다만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김준의 직계 손(孫)인지 몇 대를 거친 손인지는 의견이 다양하지만 아골타가 김준의 8대손으로 대략 추정하고 있다. 

     

    ▲ 아골타(청태조의 17대조)는 48세에 금나라를 건국하고 송나라를 공격하여 휘종,문종 두황제를 사로잡은 강력한 군주였음.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안정복도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라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라고 주장한다. 

     

    ▲ 김함보(김행,김준)는 대략 아골타의 8대 조부로 추정되며 아골타는 여진족으로 1115년 금나라를 세운 금 태조이고 누르하치 또한 여진족으로 후금, 그러니까 청나라를 세운 청 태조이다. 

     

    결국 후금의 청태조 누르하치는 아골타의 17대손이며 김함보의 25대손인 셈임.당시 시대적인 상황은 고려가 건국(917년)되고 후삼국(고려,후백제,신라)이 서로 좌웅을 겨루던 춘추전국시대 였다. 

     

    신라는 서기 935년 마지막 왕 경순왕(56대)이 고려왕 왕건에게 항복을 할 시 천년동안 사직을 지켜왔던 화랑정신을 토대로 저항세력들이 극렬히 항거했을 것이며 순순히 항복하지 않았을 확률이 다분하다. 

     

    이를 말해주듯 마의태자가 극구 항복을 반대하다가 개골산(금강산)으로 입산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나 또 다른 한편 세력들을 규합하여 은거하여 고려에 항거했다는 기록들도 있다. 이때 마의태자의 차남인 「김준」도 고려에 항거하다 고려가 후삼국의 주도권을 잡자 저항세력들을 이끌고 현재 두만강 부근 회령지방으로 이주하여 여진족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른 한편 우리는 KBS 대하 드라마 천추태후(千秋太后)를 시청한바 있다. 이 드라마는 2009년 1월 3일 ~ 9월 27일(약9개월)간 방영했었다. 천추태후(千秋太后)는 헌애왕후(獻哀王后, 964년 ~ 1029년 1월 20일) 이며 고려의 왕족, 왕비로 고려의 5대 왕 경종의 세 번째 왕비이다. 

     

    7대 왕 목종의 모후이며 태조의 아들인 대종과 선의왕후에서 출생하였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정사에는 경종이 죽은 후 궐밖에 나가 살다가 외가쪽 친척인 "김치양”과 자주 만나던 중 사통하여 아들을 얻었다. 이 아들은 드라마 상 멀리 여진족이 사는 북방으로 보내진다. 

     

    이 아이를 1115년(고려16대왕인 예종10년)에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의 선조인 김함보(김행or김준)로 설정, 묘사한 듯 하다.하여튼 드라마 상이지만 마지막 장면에 탈렌트 채시라(천추태후)와 만나는 "금준"이가 김치양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이는 후에 여진족 아골타의 선조라는 뉴양스를 풍겼다. 

     

     ▲ 실제 역사는 고려의 장군 강조에 의해 김치양과 그의 아들이 살해되었다고 기록함. 

     

    그러나 가설에 불과하다. 천추태후 사망년도가 1029년이고 아골타가 금나라를 건국한 년도가 1115년이기 때문에 연관성이 부족하고 시대적 상황이 맞지 않다. 또한 역사적 근거도 전무하다. 

     

    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왜 금(金)씨를 김씨로 불렀을까?음양5행론(陰陽五行論)에 따르면 목·금·화·수·토의 배열로 순서가 이루어는데 목(木)은 금(金)에 지고, 금(金)은 화(火)에 지며, 화(火)는 수(水)에, 수(水)는 토(土)에 지며, 다시 토(土)는 목(木)에 진다는 원리이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가 왕족인 李(木,子)씨는 金에게 질수 없다는 논리를 펴서 「금을 김」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는바 확인된 바는 없다.또한 고려의 왕건(建)도 이름이 단자이므로 연이어 이름을 단자를 쓰지 못하게 하면서 건너뛰어 쓰게 했다는 설도 있다.

     

    예를 들어 조부가 단자이면 그 아들은 단자를 쓰지 못하고 손자,또는 증손자가 단자를 쓰도록 했다고 하는 설이다.이러한 설은 당시 國王을 신격화 했으므로 신과 동일한 격식으로 이름을 쓰거나 왕에게 위해가 되는것은 불경(不敬)시 했던 문화에서 나온 얘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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